총 3974건
영대
증산계(무극도, 태극도, 대순진리회, 증산법종교)
영대(靈臺)는 무극도·태극도·대순진리회·증산법종교 등 증산계 종단의 주신을 모신 건물 또는 신단이다. 영대는 고대 중국에서는 천문대, 마음,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 머리, 무덤, 제대(祭臺), 별자리 이름 등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개념이다. 조철제(趙哲濟)가 창립한 무극도에서는 지성소(至聖所)가 영대와 도솔궁(兜率宮) 두 곳이 있었다. 영대는 48칸으로 외부는 2층이나 내부는 3층으로 되어있는데 3층에 증산 강일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의 영위(靈位)를 모시고 1층과 2층은 집회장이었다. 태극도 시절에 도주는 1955년 구천상제(증산)를 비롯해서 옥황상제, 석가여래, 관성제군, 그리고 칠성대제의 5신위를 영대에 ...
2025-10-0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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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궁
정심회
삼호궁은 정심회 제3의 성지순례지이다. 정심회에서는 삼호궁을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수기를 관장하는 삼호신(三湖神) 기도가 이루어지는 우두포(牛頭浦) 성지라 부른다. 여기서 우두(牛頭)는 소머리라는 뜻으로서 부근의 풍수가 빼어난 덕을 갖춘 명당으로써 생명을 창조하는 분만지의 형국이다.
2025-07-12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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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진경
벽사진경(辟邪進慶)은 요사스러움을 물리치고 경사가 오게 한다는 성어(成語)이다. 이는 종교의례와 밀접히 관련된 말로서 특히 방상씨(方相氏)의 탈을 쓰고 역귀(疫鬼)를 몰아내는 의식인 나례(儺禮)에서 자주 쓰였던 표현이다. 고대에서부터 방상씨나 초라니의 가면을 쓰고 벽사진경을 하는 행사가 전승되어 왔으며 조선시대에는 섣달과 정초에 재앙을 쫓는 의식으로 정착하여 궁중과 민간 모두에서 행해졌다. 특히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주관하여 섣달 그믐날 밤에 방상씨의 가면을 쓰고 벽사진경을 하는 나례의식을 행하였으며 민간에서는 섣달이나 정초에 농악(農樂)놀이나 가면희(假面戲)의 형식으로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벽사진경 의식 가운데 오늘날 ...
2025-07-09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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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영산법화종
법화종의 본존불은 구원실성(久遠實成)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하고 말법만년 미증유 색심불이관심대만다라(末法萬年 未曾有 色心不二觀心大曼陀羅)를 본존으로 하고 있다. 의례 : 소의경전인 경전 : 소의경전은 참고문헌 : 영산법화사 http://www.yeongsanbeophwasa.or.kr 대한불교 영산법화종 http://www.ysbuphwasa.org
2025-07-0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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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의 약칭. 일원의 진리를 크게 깨친 후천개벽 시대의 주세성자라는 뜻. 또는 삼계도사·사생자부라는 뜻이다. 원불교에서도 소태산 대종사에게만 대종사의 칭호를 부치고 그 외에는 정산 종사 대산 종사 등과 같이 종사라고만 한다. 원불교에서는 소태산 대종사가 법회석상에서나 또는 제자들을 대해서 설한 법문을 당대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을 종합 편찬하여 〈정전〉과 함께 대종사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을 〈대종경〉이라 하여 원불교의 기본경전으로 받들고 있다. 대종교에서 성통공완(性通功完:대각성불과 같은 뜻)한 사람을 높이어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대종교에서도 교조 나철에게만 대종사란 존칭을 사용하고 그 다음의 2세·3세 교주등 ...
2025-07-05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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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부흥경략
대종교
본서의 구성은 단군강세(檀君降世)·비서갑씨급사황자(匪西岬氏及四皇子)·단군세기(檀君世紀)·천부경(天符經)·삼일신고(三一神誥)·향사예식절차(享祀禮式節次)·찬송문(贊頌文)·단성전건축(檀聖殿建築)·신전봉찬회발기(神殿奉讚會發起)·교문부흥후삼십년경과약요(敎門復興後三十年經過略要)·지교설립(支敎設立)·송녹아도서(送鹿兒島書) 등으로 되어 있다. 비서갑씨급사황자편에서는 비서갑화백의 신녀인 비서갑씨가 단군의 후(后)라고 하였으며 이들이 부루(夫婁)·부소(夫蘇)·부우(夫虞)·부여(夫餘)를 낳았다고 하였고 단군세기편에서는 단군의 강세와 건국년 재위기간 47대 단군조선의 왕검에 대한 역사 등을 기록하고 있다. 천부경편에서는 이 경전이 1917년 ...
2025-07-0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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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몽
기독교/기타
나운몽은 평안도 안주의 보광학교 고등과를 졸업 후 일본 유학 중 학업을 스스로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일본에서의 차별과 민족적 상황에 대한 큰 실망이 원인이었다. 미곡상으로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해 고향을 탈출한 후 주색(酒色)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 “살기도 싫고 죽기도 싫어”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정처 없는 세월을 보내던 중 합천 해인사에서 중이 되었지만 파문을 당하였다. 그러던 그가 부친으로부터 들었던 새별산인 용문산에 입산하여 구도자의 길을 출발한 것은 1940년 5월 7일이었다. 1942년 어느 날 용문산 토굴에서 “네 마음을 정결하라. 그리하면 나를 보리라 의심스 ...
2025-07-0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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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위심
동학계
‘各自以自心爲心’으로 ‘사람들 각기 자신이 지닌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는 의미로 최제우가 당시의 시대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용어. 내용 : 각자위심(各自爲心)은 자신의 사사로운 마음을 위주로 한다는 의미이다. 즉 각자위심은 각기 자기의 마음 곧 자신의 사사로움만을 추구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최제우는 후천 개벽의 세계는 곧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세상임을 주장하며 동귀일체란 각자위심의 반대가 되는 개념으로 한울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아 한울님과 한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참고문헌 :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윤석산 모시는 사람들 2004)
2025-05-1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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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조약
신종교일반/기타
1882년 조선과 미국 사이에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자 프랑스도 조약의 협상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섰다. 여기에는 조선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천주교 선교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하지만 조선은 협상에 나서면서 선교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조선에서는 프랑스의 최대 관심사가 종교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초기의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다가 결렬되고 말았다. 조선과 프랑스가 다시 협상을 시작하려는 조짐은 1885년에 가서 조선 정부의 외교 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Möllendorff)의 중재로 가시화되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를 대신하 ...
2025-10-1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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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우
천도교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일찍부터 한학을 익혔으나 기울어져가는 가세, 성리학의 적서와 남녀 차별,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서세동점(西勢東漸) 등이 그의 유년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3세의 나이로 울산 출신의 박씨(朴氏)와 혼인하였고, 16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릴 적부터 성리학의 봉건적 사회에 대한 불만과 서세동점의 위기에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고 창생을 구할 수 있는 새로운 진리를 구하기 위해 구도에 나섰다. 우선 주유천하를 통해 장사와 의술(醫術)·복술(卜術) 등에 관심을 보였으며, 울산 유곡동에 정착하여 명상을 하던 중 1855년 한 이인으로부터 천서를 받고, 천성산 적멸굴에서 49일 기도를 행하였다. 그럼에 ...
2025-10-1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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