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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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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접과 포는 전교인과 수교인의 인맥에 따라 지역을 초월하는 조직으로 초기 천도교(동학)의 단위 조직이다. 천도교(동학)의 공동체는 접(接)과 포(包)로 이루어졌다. 접이 언제 조직되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접의 책임자인 접주(接主)는 1862년 12월 29일(음) 경북 포항시 흥해 매곡동 손봉조의 집에서 처음으로 임명하였다. 포의 조직도 언제부터 조직되었는지 불확실하나, 1893년 3월 10일 보은에서 개최한 척왜양창의운동에서 처음으로 포의 책임자 대접주(大接主)를 임명하였다. 초기에는 지역 이름을 차용하여 영해접, 안동접, 영덕접 등과 같이 불려짐에 따라 포접 조직이 지역 조직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접의 규모는 ...

2025-10-0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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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산대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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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정종은 다른 종파와는 달리 니치렌을 본불(本佛)로 보고 있다. 연화산은 다이세키지의 산호(山号)를 다보후지대일연화산(多宝富士大日蓮華山)으로, 약칭하여 대일연화산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일련정종의 본격적인 한국 유입은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이다. 왜색종교로 인식된 이 종파를 정부는 1964년에 금지시켰다. 이후 활동의 제약이 해제되고, 한국에서는 여러 분파가 활동하고 있다. 다이세키지의 신도단체였다가 독립한 창가학회의 한국지부인 SGI한국불교회를 필두로 한국일련정종총본부, 대한정법일련정종법화강불교회, 연화산대한사, 대한불교일련종 대법산광선사, 일련정종중앙회 등이다. 연화산대한사는 일련종 종립대학인 릿쇼(立正)대학을 졸 ...

2025-10-0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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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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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계

1907년 12월에 강일순이 차경석에게 수부(首婦)를 요구하였다. 이에 차경석은 자신의 이종사촌 동생인 미망인 고판례(高判禮; 1880-1935)를 강일순에게 추천하였다. 정읍 차경석의 집에 머문 강일순은 1908년에 고판례를 천지공사에 끌어들였다. 드러누운 강일순의 배에 올라 탄 고판례에게 칼로 자신을 겨누게 하는 음양공사를 행하였다. 선천시대에는 남성의 시대였다면 후천시대에는 더 이상 남성의 시대가 아니라는 상징적 행위를 당시에 고판례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 강일순은 고판례를 수부라 하고〔수부택정〕 그녀의 처소 역시 수부소(首婦所)라 하였다. 더불어 강일순은 천지대업(天地大業)을 고판례에게 맡겼다고 한다. 강일순이 ...

2025-10-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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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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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계

신라 사선(述郎·南郎·永郎·安詳)은 영남 또는 영동인이며 이들은 자주 강원도 지역으로 놀러 다녀 많은 유적을 남기고 있다. 선유담도 그 중 하나로 고성 해변에 그들이 3일을 놀고 간 삼일포(三日浦)가 있고 통천에는 사선봉(四仙峰)과 총석정(叢石亭) 간성(杆城 현 高城)에는 선유담(仙遊潭)과 영랑호 금강산에는 영랑봉(永郎峰) 장연(長淵)에는 아랑포(阿郎浦) 강릉에는 한송정(寒松亭)이 있다. 『고성군지』에 의하면 조선시대 동헌으로부터 10리쯤의 거리에 선유담이 있으며 이 곳에 노송이 어우러진 자그마한 산이 있고 그 산의 반석 위에 택당 이식이 ‘가학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한편 군수 김광우는 영조22년(1746)에 선유담 ...

2025-07-14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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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천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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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북한은 종교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바꾸어 1992년 사회주의헌법 개정에서 신앙의 자유 및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종교를 이용할 수 없음을 명시하였다. 해방 당시 천도교 교세는 남한보다 북한에서 우세했다. 정전협정(1953) 당시 북한은 인공기와 천도교 기를 함께 들고 왔을 정도였고 북한에 조선노동당 외에 천도교 청우당이 유일하게 존속하고 있음은 북한에서 천도교의 위치를 말해준다. 여기에는 역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데 일제하 천도교 도정 박인진을 비롯한 함경도 천도교인들과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2군 6사가 이념과 사상 종교를 초월하여 함께 일제에 대항하였던 조국광복회 결성의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다. ...

2025-07-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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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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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진경(辟邪進慶)은 요사스러움을 물리치고 경사가 오게 한다는 성어(成語)이다. 이는 종교의례와 밀접히 관련된 말로서 특히 방상씨(方相氏)의 탈을 쓰고 역귀(疫鬼)를 몰아내는 의식인 나례(儺禮)에서 자주 쓰였던 표현이다. 고대에서부터 방상씨나 초라니의 가면을 쓰고 벽사진경을 하는 행사가 전승되어 왔으며 조선시대에는 섣달과 정초에 재앙을 쫓는 의식으로 정착하여 궁중과 민간 모두에서 행해졌다. 특히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주관하여 섣달 그믐날 밤에 방상씨의 가면을 쓰고 벽사진경을 하는 나례의식을 행하였으며 민간에서는 섣달이나 정초에 농악(農樂)놀이나 가면희(假面戲)의 형식으로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벽사진경 의식 가운데 오늘날 ...

2025-07-09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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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계신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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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은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립되었다. 이후 최시형(崔時亨)과 손병희(孫秉熙)로 도통이 전수되면서 1905년 천도교(天道敎)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동학계신종교는 1895년 동학농민혁명이 진압된 후 최시형은 처형되고 손병희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가 다시 귀국하여 동학교도를 다시 규합하는 과정에서 천도교의 종교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손병희와 정치운동을 강조하는 이용구의 분열에서 본격화 한다. 1906년 이용구(李容九)는 천도교의 정당색채를 경계하는 손병희와 결별하여 시천교(侍天敎)를 창립한다. 이용구는 동학의 장로 김연국(金演局)을 맞이하여 교세를 굳건히 하면서도 정계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용구 사망 후 1913년 김 ...

2025-07-0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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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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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고사(檀奇古史)’는 ‘단군(檀君)과 기자(奇子)의 옛 역사’라는 의미이다. 원문은 발해문이었다고 하며 약 300년 뒤 황조복(皇祚福)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현재의 국한문본은 1959년 정해박(鄭海珀)이 한문본을 다시 번역한 것이라 하나 발해본은 물론 한문본도 오늘에 전하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 대야발의 서문에 이어 제1편 전단군조선 제2편 후단군조선 제3편 기자조선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한제국 학부 편집국장 이경직(李庚稙)의 중간서(重刊序)와 신채호(申采浩)의 중간서가 부록으로 붙어있다. 내용은 약 2천여 년 동안(BC.2512~BC.416) 지속되었다고 하는 ‘전단군조선(前檀君朝鮮)’과 ‘후단군조선(後檀君朝鮮) ...

2025-07-0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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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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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나용환은 20세 까지 한학을 공부했고 1894년 동학에 입도했다. 동학혁명 때 나인협(羅仁協)과 함께 평안도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1904년 진보회 결성시에는 평안도에서 회장을 맡아 정부 혁신을 도모했다. 1919년 2월 25일경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해 상경한 그는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3·1독립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천도교 교육을 위한 경성시일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 음취임하는 등 천도교계의 원로로서 일하다가 1936년 환원했다. ...

2025-07-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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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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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선불교에서는 국조단군이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 엄연한 역사로 존재하는 한민족의 정신이고 뿌리이므로 국조전을 건립하여 민족정신의 구심을 세움과 동시에 선도문화의 부활을 이루고 민족통일과 인류평화를 이루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선불교의 국조전은 첫째 나의 뿌리를 찾는 곳이며 둘째 한민족의 기가 살아있는 곳이며 셋째 민족통일과 인류평화를 이루기 위한 곳이라고 말한다. 선불교의 국조전은 크게 본원국조전 수도국조전 제주국조전의 세 곳이 있다. 본원국조전은 2006년에 건립한 선불교 총본산의 중심건물로 국조를 모시는 단군성전이다. 국조전 천궁과 축복마당 신시촌 영성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원국조전에서는 누구나 참가하여 선불 ...

2025-06-0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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