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4

신장

|

기타

원래 신장은 도교의 신으로서 오방오제설(五方五帝說)을 기초로 한 전설적 성격이 있으며, 이것이 무속과 민간신앙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오방신장(五方神將)’이라 하며 집이나 동네의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모셔진다. 오방의 신들은 각각 부인을 거느린 신으로 나타나고 장군·원수의 위엄을 가진 신으로 구전되고 있다. 오방신장은 동에는 청제신장, 서에는 백제신장, 남에는 적제신장, 북에는 흑제신장, 중앙에는 황제신장이라는 다섯 신장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신격으로 인식되는 것이 무속신앙의 일반이다.

2025-10-06 23:32

27

신단수

|

신단수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환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정상 신단수 아래에 내렸다는 것과 웅녀가 단수 아래서 빌어 아기 가지기를 원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제왕운기』에서는 환웅이 3,000의 ‘귀신’을 이끌고 ‘신단수(神壇樹)’에 내렸다고 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신단수는 환웅이 내려온 곳이며 아기의 출생을 기원하는 대상이 되므로, 한국 전래의 천신신앙과 수목신앙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단수는 이후 서낭나무나 당산나무 등과 같은 신성한 나무의 관념으로 변화해 간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2025-10-03 22:36

27

성주교회

|

일제의 총독부는 한반도의 유사종교를 끊임없이 탄압했는데, 이때 김성도의 새주파는 이러한 탄압을 피하기 위해 1935년 10월 경 총독부 종무과에 종교단체로 등록하게 되었다. 이것이 김성도의 아들 정석천을 대표자로 한 성주교이다. 이때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백남주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적인 종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1943년 가을에 김성도와 두 아들, 정석천과 정석진, 그리고 10여명의 신도들을 구속하였고 심한 고문과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 후유증으로 김성도는 1944년 4월 만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김성도는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다른 구원자를 보내 뜻을 이룰 것이며 ...

2025-09-21 21:47

27

성적타락

|

통일교회

통일교회 교리에 의하면, 인간시조 아담과 해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고 타락했다는 성경의 내용은 성장기간에 있던 아담과 해와가 뱀으로 비유된 천사장 누시엘의 성적(性的)인 유혹에 넘어가 행음(行淫)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잃고 사탄의 주관 하에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선악과는 해와를 비유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로서 해와의 성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성적타락은 영적타락(靈的墮落)과 육적타락(肉的墮落)의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 먼저 천사장 누시엘이 성장기에 있던 해와를 성적으로 유혹하여 영적(靈的)인 불륜의 관계를 가짐으로써 누시엘과 해와가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타락한 해와가 다시 ...

2025-09-05 10:01

27

방택

|

유교

유교의 국가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는 하늘과 땅에 대한 제사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원구(圓丘)를 만들어 하늘[天神]에 제사지내고 방택(方澤)을 만들어 땅[地祇]에 제사지냈다. 방택은 연못 가운데에 네모난 언덕을 만든 것으로 땅의 신인 지기(地祇)는 땅 아래에 있고 또 땅은 네모나다[地方]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원구와 방택을 만들어 천·지(天地)에 제사를 지냈으며 현종 22년(1031) 정월에 처음으로 방택의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천·지(天地)에 대한 제사는 천자(天子)만이 지낼 수 있다는 유교의 명분론(名分論)에 따라 원구와 방택의 제사가 ...

2025-07-08 23:45

27

방언공사

|

원불교

원불교 초기인 1918년(원기3)부터 1년간 원불교 교조인 박중빈과 제자들이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앞 해안 갯벌을 막아 농토를 만든 공사. 소태산은 초기교단의 운영과 방언공사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금주금연과 허례폐지 등을 시행했다. 자금이 어느 정도 확보되자 1918년(원기3) 3월에 바다를 막아 언답을 만드는 방언공사를 시작했다. 주위에서 비평과 조소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제자들과 새끼를 꼬아 말뚝으로 방축선을 정하고 가래와 삽으로 캐낸 갯벌 흙을 달구지와 지게 망태기로 운반하여 1년 만에 2만6천여 평의 농토를 얻게 되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방언공사를 성공리에 마쳤으나 ...

2025-07-08 23:41

27

물법교화

|

봉남교

봉남교(奉南敎)를 창립한 김봉남(金奉南 1898-1950 본명 天根 호 奉南)은 1943년 11월 재통을 하고나서부터 유ㆍ불ㆍ선 삼교의 원리에 관통하고 중생삼고(飢寒疾)를 해탈하는 심수법(心水法)의 원리를 오득(悟得)하였다는 것이다. 김봉남은 1946년 8월 신도들과 함께 천일수련을 마치고 부산 영도 평화관에서 제자들 몇 사람에게 물법을 전수하였다. 물법전수는 원래 봉남만이 행할 수가 있었던 도력과 권능을 제자들에게 전수하여 그들로 하여금 직접 물법을 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법전수의 특별한 절차나 의식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제자들 가운데 수련을 많이 쌓은 사람에게 도력과 함께 물법을 준 것이므로 물법전수는 실상 ...

2025-07-08 21:24

27

무속춤사위

|

기층신앙

무속 의식인 굿의 각 거리에는 춤이 있다. 춤은 무당의 무가(巫歌)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추어지기도 하고 춤 그 자체가 굿의 중요한 의식이 되기도 한다 굿에서 춤은 영신(迎神)‧접신(接神)‧오신(娛神)‧신놀이(神遊)‧축귀(逐鬼)‧진혼(鎭魂)‧송신(送神)과 같은 종교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외에도 굿판에 참여한 구경꾼을 위한 놀이적인 춤도 있다. 무속무용은 지역 무속문화의 양상에서와 같이 강신무의 춤과 세습무의 춤이 그 특징을 달리한다. 한강 이북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강신무권의 무당춤은 힘이 있고 변화가 많다. 무당은 여러 신격에 맞는 다양한 신옷을 입고 신무(神舞)를 춘다. 무당에게 강신한 신과의 접신은 신옷을 ...

2025-07-08 20:26

27

대한불교미륵선교종

|

2001년 4월 3일 초암의 주도로 창종된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 각행원만한 근본교리를 봉체하고 미륵불의 정토교리 및 용화삼회법문을 듣기 위한 정진을 선양하며 정혜불리설과 좌선보다 견성을 중시한 도의국사의 종풍을 진작하고 불법중흥의 원융종풍을 위한 노력을 다하여 견성성불 전법도생함을 종지로 한다. 본종의 역사를 보면 2000년 8월 10일 창종 준비 대회를 가졌으며 같은 해 11월 2일 초대 종정으로 초암을 추대하였다. 2001년 3월 20일 종헌을 선포하고 같은 해 4월 3일 창종 대회 및 초대 종정 취임법회를 봉행하였다. 또한 같은 해 4월 18일에 초대 총무원장으로 법정이 취임하였고 5월 8일에는 일본 종무원( ...

2025-07-05 20:55

27

대성교회

|

황해도 해주 출신의 박윤식은 1964년 10월 교인 30명과 함께 원효로에서 전세교회를 시작하였다. 1969년 9월 대방동에 새로 교회를 지으며 ‘시온산 한돌교회’로 개칭하였고 1971년 11월 다시 신림동에 새 교회당을 신축하며 ‘일석교회’로 명칭 변경하였다. 1977년 7월 노량진에 새 성전을 신축하며 교회 명을 ‘대성교회’로 변경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폭발적인 성장을 맞아 교회건물이 포화상태가 되자 1992년 또 다시 오류동으로 이전하였다. 이 교회는 1995년 1월 ‘평강제일교회’로 최종 명칭 변경되었다. 박윤식은 구속사(救贖史)에 입각하여 성경을 해석하였으며 그가 집필한 ‘구속사 시리즈’는 전 세계 16개 ...

2025-07-03 16:17

27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