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단군교
한명윤이 창립한 단군계 신종교의 초기 이름.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2:02
15
단군계신종교
홍익인간과 이화세계
2025-07-01 19:27
15
다락방기도운동
다락방기도운동은 1987년 8월 2일 부산에서 김기순 전도사와 38명의 성도가 모여 회집한 기도회로부터 시작되었다. 같은 해 9월 류광수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10월 7일 동삼제일교회 개칭한 뒤 1988년 1월 예배처소를 부산 영도구 동삼동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류광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가 1991년 도덕성문제와 이단시비로 목사면직 처분을 받았지만 동삼제일교회에서의 다락방 목회활동은 계속하였다. 2001년 12월 임마누엘교회로 명칭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다. 그는 신학생 시절부터 전도에 열의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락방운동은 이러한 그의 전도 강조를 통해 발생된 일종의 ...
2025-07-01 02:18
15
내면의 빛
퀘이커교
종교적인 진리의 문제로 고민하던 창시자 조지 폭스는 23세가 되던 1647년에 “한 분 한결같은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니 그만이 네 처지를 말해줄 수 있다.”는 음성을 듣는다. 이후에 퀘이커교에서는 이 음성을 ‘내면의 빛’ ‘내면에 계신 그리스도’ ‘각 사람 안에 있는 신의 것’ ‘신의 능력’ ‘신의 증거’ 등으로 불리게 된다. 그 빛은 모든 사람에 있고 모든 사람을 비춘다고 한다. 퀘이커교에서는 침묵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면의 빛을 향함으로써 영적 각성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2025-07-01 01:40
15
낭랑
중국 당나라 때 복건성(福建省)의 임(林)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관세음보살에게 우담화(優曇華)를 하사받고 딸을 낳았다. 그 딸은 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오빠를 구한 영력(靈力)을 발휘한 후 치병과 예언에 신이함을 보였다. 황실에서는 그녀에게 '천비(天妃)'라는 칭호를 하사하고 그녀가 죽은 후에는 영혼을 기리는 사당을 각처에 짓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낭랑'이란 도교 여신의 총칭이다. 서왕모(西王母)의 왕모낭랑(王母娘娘) 벽하원군의 태산낭랑(太山娘娘) 천비(天妃)의 천후낭낭(天后娘娘) 등인데 천후낭랑은 마조(媽祖)라 불리며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항해자의 수호신으로서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
2025-07-01 01:38
15
나철
대종교
1891년(고종 28) 29세 때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였고 이후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承政院)의 가주서(假注書)와 외교문서를 관장하던 승문원(承文院)의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 문서 교정)를 역임하였다. 1895년(고종 32) 33세 때 갑오개혁 차원에서 종래의 재정기구를 정리하기 위해 설치된 징세서(徵稅署 1895.3.-9.)의 서장으로 발령을 받았으나 곧 사직하였다. 대종교 측 자료에 따르면 관직을 사임한 이후의 행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1909년 이전까지는 주로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구체적으로 1904년에 전남 강진 출신의 오기호(吳基鎬 1863-1916) ...
2025-07-01 00:50
15
나종헌
천법교
동학계 신종교인 천법교(天法敎)의 창립자. →천법교 참조.
2025-07-01 00:46
15
김삼일
청도대향원
청도대향원(靑道大享園)을 창립한 김삼일(金三一 1924-1992 호 伯峰)은 1924년 8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동 진곡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증산법종교의 2대 교주를 지낸 김병철(金炳澈)이다. 보통공립학교를 졸업 후 생업에 종사하다가 1943년 강순임(姜舜任)을 만나 그를 도왔다. 일찍이 강순임이 ‘성부(聖父)의 명에 의하여 삼일이는 내 아들이 되었다’고 하면서 끔찍하게 사랑하였으며 그도 강순임을 극진이 모셨다. 부친과 강순임이 교단을 금성골에서 장대골로 옮기고 다시 구릿골과 오리알터(김제군 금산면)로 옮기는 동안 삼일은 함께 받드는 한편 수도에도 전념하였다. 1959년 강순임이 사망했을 때 9일장의 상 ...
2025-06-30 16:06
15
김대거
원불교
김대거는 11세에 원불교에 입문하고 16세에 출가하여 박중빈과 송규의 경륜과 포부를 받들어 실현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1962년에 정산종사가 열반하자 법통을 계승하여 2월 23일 49세에 종법사로 추대되었다. 김대거는 교도들의 법위향상을 위한 훈련강화 삼동윤리 실현을 위한 해외교화와 종교연합운동 전개를 강조했다. 또한 교화3대 목표운동(연원달기·교화단 불리기·연원교당 만들기)을 추진하여 원불교 교세를 2배 이상 신장시켰다. 그는 재위기간 동안 한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통찰하면서 변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1962년 10월 발표한 ‘신생활운동요강’은 새마을운동의 이념적인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
2025-06-30 15:53
15
김낙철
천도교
김낙철은 33세(1890년)에 동생들과 함께 동학에 입도했고, 이듬해 3월에는 공주군 신평리에서 호남도인 남계천, 김영조, 김낙삼, 김낙봉(弟), 손화중 등과 함께 최시형을 배알하고 직접 지도를 받았다. 이 당시 부안지역에서 동학에 뛰어든 사람들은 무려 수천 명에 달했는데, 이를 주도한 이들이 김낙철을 비롯한 부안김씨 문중 출신들이었다. 1893년에는 복합상소 운동에 참여했고,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부안 대접주로서 부안에서 봉기하였다. 집강소 통치기에는 부안에 2개소의 도소(都所)를 설치하여 관내 치안유지에 기여하였다. 특히 이 당시 미곡을 구하러 온 제주도 어민들이 무사히 미곡을 구할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
2025-06-30 15:46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