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보고
금강대도
‘보고(寶誥)’는 금강대도의 제2대도주가 내려준 『보경』 안에 담긴 경문이다. 금강대도의 신앙의 대상인 대·도·덕성사건곤부모의 덕을 찬탄하고 송덕하여 심법을 전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경문이다. 보고에는 대성사부보고(大聖師父寶誥), 대성사모보고(大聖師母寶誥), 도성사부보고(道聖師父寶誥), 도성사모보고(道聖師母寶誥), 덕성사부보고(德聖師父寶誥), 덕성사모보고(德聖師母寶誥), 십성보고(十聖寶誥) 등이 있다. 이러한 보고는 심성수련을 하는 성재(誠齋)공부 시에 송경하여 심성을 배합할 수 있도록 하고, 모든 의식 때에 봉독하도록 한다. 의식을 행할 때는 분향하고 촛불을 밝혀 신명을 감응토록 하고 부정을 제거하며, 목탁과 바라 ...
2025-07-09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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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정심회
미륵정심회(彌勒正心會)를 창립한 이호정(李鎬禎 1875-1966?)은 1875년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보천교에 입도하여 중요 간부로 있다가 보천교가 패쇠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1944년경부터 영일군 죽장면 지동에 서당을 차리고 훈장노릇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미륵사상을 주입시켰다. 8.15해방이 되자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전개 정심교라는 교명으로 포항 덕수동에 교단본부를 두고 포교한 결과 많은 신도를 얻었다. 그는 포교방침을 불교 사찰내의 침투라는데 착안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머리를 깎고 절에 신도가 되어서 포교 할 것을 명하였다. 이런 방침은 기성불교의 사찰 내에 자기의 시인미륵신앙(侍人彌勒信仰)을 보 ...
2025-07-0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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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필송
태화교
태화교(太和敎)를 창립한 문필송(文弼松 1926-? 호 法天)은 1926년 제주도 성산면 시흥리에서 태어났다. 김봉남이 도각(道覺)하여 무불통지 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형 문갑송이 15세 된 아우 필송을 봉남에게 보내 제자가 되게 하였다. 봉남의 제자가 된 문필송은 신도중 가장 어린 나이였으나 구도에 충실했기 때문에 봉남이 총애하는 상좌가 되어 법천이라는 도호를 받았다. 봉남이 사망하고 난후 봉남교단본부 설치가 이루어졌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와해되고 제자들이 각기 한 교파를 세우자 문필송도 고남규와 함께 고향인 시흥리에서 1953년경 태화교라는 이름으로 한 파를 형성했다. 그는 태화교의 대표가 되어 한 때 제주지방을 ...
2025-07-0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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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멸왜기도운동
3.1운동을 주도한 천도교는 구파를 중심으로 1926년 6.10만세운동 주도 1927년 신간회 참여 등 지속적인 민족운동을 전개시켜나갔고 1936년부터는 박인호의 밀령 하에 멸왜기도운동을 벌였다. 이는 구체적으로 식고문(食告文) 시행 독립운동 자금에 충당하기 위한 특별희사금모집 멸왜기도 실시로 진행되었다. 식고문은 교인들에게 아침과 저녁 식사 때마다 시행할 것을 지시한 것이고 멸왜기도문(“한울님께 조화받아 개 같은 왜적 놈을 一夜間에 소멸하여 속히 조선독립달성하고 대보단에 맹세하여 한(汙)의 원수까지 갚겠습니다.”)은 특별기도라고 이름 하였다. 그러나 1938년 2월 17일 멸왜기도문이 일제에게 누설되어 홍준의 최준모 ...
2025-07-0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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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무성
김항은 1881년에 「대역서(大易序)」를 지었다. 그 내용의 첫 머리가 “聖哉 易之爲易 易者曆也. 无曆無聖 无聖无易”로 시작된다. 내용은 “성스럽도다. 역(易)이 역(易)이 됨이여. 역(易)이라는 것은 곧 책력(曆)이니 책력(曆)이 없으면 성인이 없고 성인이 없으면 역(易)도 없다”는 뜻이다. 책력이 없으면 곧 성인도 없다는 뜻은 모든 성인이 역수원리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성인이 되는 것이니 역수원리가 없으면 깨달음의 근거가 사라지게 되므로 성인이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더불어 이렇게 역수원리를 깨달은 성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역(易)의 원리가 바르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역(易)→역 ...
2025-07-0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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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룡공원
삼덕교
허욱(許昱 1887-1939 호 南松)이 창립한 삼덕교(三德敎)는 경상남도 하동에서 창립하여 여러 곳에 옮겨 다니다가 1982년에 본부를 김제군 봉남면 평사리 현 위치로 옮기게 되는데 이 기지를 마련키 위해 39년간이나 공을 들였다고 한다. 2대 교주 서상범의 뒤를 이어 교주가 된 서도준(徐道俊)은 이 땅이 도의 기지임을 알고 오래전부터 매입하려 하였으나 땅 주인에게 번번이 거절당하다가 겨우 사들여 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4000평의 대지에 본부 건물과 수백 평에 달하는 ‘등룡공원(登龍公園)’이라는 공원을 조성했다. 이 공원에는 15기의 비각(碑刻)과 석탑 석물 등을 조성해 놓고 있는데 생화제단(生化祭壇) ․ 단군상봉 ...
2025-07-0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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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
인희선도태백원
도통은 인희선도 도반들에게 인희선도를 효율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제작되었다. 내용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김용국이 강원도 홍천군 산골에서 태어나 金相哲(김상철) 이라는 이름으로 동두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중 도인(道人)의 안내로 수도를 하다 스승과 이별하기까지의 내용이다. 제2부는 인희(仁僖)라는 역호(曆號)와 함께 仁僖課業(인희과업) 三大目標(삼대목표)를 부여받고 하산할 때까지의 내용이다. 제3부는 법명을 김용국(金龍国)으로 개명하고 인희선도(仁僖仙道)를 세상에 알리는 내용이다. 참고문헌 : 『도통-인희선도도통기』(김대원 인희선도태백원 2002)
2025-07-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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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선밀종
2007년 11월 15일 고경 원묵(高驚圓墨)의 주도로 창종된 본 종은 말법중생의 장래안(將來眼)을 관찰하여 제불보살의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인 원각경지(圓覺境地)에 이르도록 전법도생(傳法度生)케 하고 선교일치와 염불신앙을 함으로써 성불하기까지 제세안민(濟世安民)의 호불호국사상적 교리를 봉체함을 종지로 한다. 원효선사를 종조로 하며 소의경전은 『금강경』 『지장삼부경』이고 기타경전의 구와 지송은 제한하지 않는다. 2008년 현재 원로원장 법산 법천(法山 法泉)과 총무원장 원묵이 종단을 이끌고 있고 산하기관으로서 중앙신도회와 고경불교대학을 두고 있다.
2025-07-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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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선교종
1992년 10월 5일 최보희의 주도로 창종된 본종은 다음의 3가지를 종지로 한다. 첫째 보우국사의 원융정책과 이념을 꽃피우고 선과 교의 겸수를 바탕으로 원효대사의 화쟁(和諍)정신과 만해선사의 유신이념을 실천궁행한다. 둘째 자비정신 이어받아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이념을 구현한다. 셋째 과거의 구태연연한 모습을 버리고 사회대중을 위해 헌신 봉사한다. 본종에서는 본존불로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금강경』과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며 종조는 태고부우국사(太古普愚國師)이다. 1992년 10월 5일 창종이후 이듬해 10월 20일 창종 1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하였고 1995년 11월 9일에는 제2대 종정으로서 동호가 추대되었다. 20 ...
2025-07-0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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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근대기 국내 최초의 단군신앙에 대해 대종교에서는 1904년 백두산을 중심으로 단군교를 포명한 백봉이라고 하였으나 일부에서는 1890년 평안남도 일대에서 단군신앙을 포교한 김염백의 신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염백의 신교가 이후 정통의 맥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나 김염백의 신교에 입교한 사람 중에 한명윤(韓明允)이 자신의 집에 교단을 설치하고 스스로 교주가 되어 포교하였다. 한명윤은 신도들과 더불어 3월 15일 단군어천절과 10월 3일 단군개천절에 제사를 올리고 매 일요일마다 예배를 하되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것을 의절(儀節)로 삼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교단을 무교(巫敎)라고 비판하였으므로 한명윤은 1916 ...
2025-07-0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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