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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곡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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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의 창설자 박한경 도전(都典)은 1969년 4월 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함과 동시에 중곡도장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71년 6월 16일 영대봉안치성을 올렸다. 대순진리회 첫 번째 도장에 해당하는 중곡도장은 『전경』에 “법(法)이라는 것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萬方)에 펼쳐 나가는 것이므로…”라는 상제의 법설에 따른 것으로, 대한민국의 수도이며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서울의 가운데 고을인 중곡동(中谷洞)에 건립되었다. 터는 북한산, 수락산, 용마산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와 중랑천과 한강을 바라보는 자리로 용마포태혈(龍馬胞胎穴)로 불린다. 연건평 872평으로 영대를 포함하여 총 8개동의 건물이 있다. ...

2025-10-0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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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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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은의 출신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평양에서 활동한 것은 분명하다. 1897년 출생하고 신앙생활의 방황을 겪으며 살다가 43세가 되던 1939년 신앙체험 후 ‘성신의 불을 받아 난치병을 기도로써 쾌유케 하는 영통력의 소유자’로 이름을 날렸다. 황국주의 광해교회에 출석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황국주로부터 피가름 원리를 배우고, 삼각산기도원을 설립하여 기도원 운동을 통한 토착적 신앙운동의 전통을 형성했다고 평가된다. 「생의 원리」라는 저서를 통해 ‘피가름 원리’를 설명하면서, 인간이 타락할 때 뱀의 더러운 피를 받았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는 더러운 피가 섞여 흐르는데, 그것을 깨끗하고 성스러운 성신의 피로 정화해야 한다는 피가름 ...

2025-10-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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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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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창언은 1877년 12월 6일 함경북도 경성군 주북면 직동에서 출생했다. 호는 백향(白香).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고향에서 계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16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20년 동안 시교원(施敎員)으로 활동하면서 수천 명의 교인을 입교시켰고,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로 승질(陞秩) 되면서 신일당전무(信一堂典務)·성일당전무(成一堂典務)·참의원참의(參議院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942년 11월 19일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임오교변으로 체포되어 목단강경무처에 구금되어 심한 고문과 기한에 시달리다가 15개월만인 1944년 1월 9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교단에서는 1946년 8월 ...

2025-10-0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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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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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이중성은 1897년 음력 4월 29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에서 부친 이치삼(李致三)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14년에 일본에서 공부한 적이 있으며, 20세인 1916년부터는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중성은 주로 독립운동 자금 조달의 임무를 맡았는데, 이 때문에 그가 보천교와 접촉하였다고 한다. 1928년 봄에 차경석을 만난 이중성은 보천교의 외무를 주관하는 수호사장(修好司長)을 맡기도 하였으나, 보천교를 탈퇴하여 독자적인 수도 생활을 하였다. 1946년에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 편술을 마친 그는 1958년 11월에 타계하였다. 『천지개벽경』은 1992년 ...

2025-10-0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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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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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불교

이용래는 이운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하나, 그 구체적인 출생 기록은 알 수 없다. 오방불교의 창립자인 김치인은 1861년 이운규를 만나 도를 배웠다고 하였는데, 이는 이강오 등에 의해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오히려 이운규에게 도를 배운 이용래로부터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금강불교연원록』에서는 이운규가 청림도사(靑林道士)에게 지도를 받고, 이용래는 이운규에게 지도를 받았다는 흐름 속에서 금강불교의 도맥 연원으로 제1대 이운규, 제2대 이용래, 제3대 이복래, 제4대 김치인, 제5대 김용배 등의 5대 선사를 말하고 있고, 『광화김처사법언록』에는 이용래가 이운규에게 도를 배워서 이복래와 김치인에게 전교하 ...

2025-10-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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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자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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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자배기’는 본디 전라도 농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 전승되는 ‘육자배기’의 사설이나 곡조는 조선 말기에 남도 사당패들이 농요 「육자배기」를 선소리로 바꿔 부르면서 변한 것이고, 「산타령」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 사당패들이 소멸되면서 판소리하는 잡가 광대들이 이를 불렀고 지금은 주로 판소리 여류 명창들이 이어가고 있다. 한편, 빠른 속도로 된 ‘자진육자배기’가 생기면서 본디 육자배기를 ‘긴육자배기’라 부르게 되었다. 사당패들의 전통을 따라 「육자배기」는 「보렴」 - 「화초사거리」 - 「긴육자배기」 - 「자진육자배기」 - 「흥타령」 - 「개구리타령」 순으로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긴 ...

2025-10-0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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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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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광대학교는 전북 익산시 익산대로 460에 소재한 학교법인 원광학원 산하의 고등교육기관이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개교정신을 바탕으로 과학과 도학을 겸비한 전인교육으로 새 문명사회 건설의 주역 양성을 건학의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160만㎡의 교지에 15개 단과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을 비롯한 9개 대학원과 10개의 부속병원을 갖추고 2만 5천여 명이 학문연구와 교육 및 진료에 전념하고 있다. ‘원광’이란 교명은 1951년 5월 15일 재단법인 임시 이사회에서 대학인가 신청에 관한 안건을 제시할 때 “원불교에서 경영하는 대학이니 ‘원(圓)’자로 하고, 또 원불교 포교사를 양성하여 본교(本敎)를 광채 ...

2025-10-0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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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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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라즈니쉬(1931~1990)는 전 세계적으로 영적 스승으로 숭앙되며 서구의 뉴에이지 문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가 1974년 인도 뿌나(Poona)에 세운 아쉬람(ashram) 혹은 수행처는 영적 구도자들의 메카로서 특히 서구의 많은 젊은이들을 불러들였으며, 현재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동양의 명상과 서구의 심리치료법을 접목하여 현대인을 위한 수많은 명상기법을 제시하였고, 그 중 잘 알려진 것은 ‘동적 명상’(Active Meditation)으로서 다이내믹 명상과 쿤달리니 명상이다. 오쇼는 1980년대 미국에서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건설하나 정부와의 마찰로 미국에서 추방당한 후 세 ...

2025-10-07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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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무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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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두월(陳斗月)은 김항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1898년 김항이 사망한 후 제2대 교주인 하상역과 제자들 사이의 분란으로 교단이 분열될 때 따로 독립하여 전북 완주군 운주면의 대둔산 밑에서 하나의 교파를 형성했다. 교단 설립 후 진두월이 어떻게 교단을 운영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진두월이 사망하게 되자 신도의 대부분이 손치성의 무량대도회(無量大道會:無量敎)로 흡수되는데,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은 당시 무량대도회에서 무량주(無量呪)와 아미타불을 주송할 때 몸에 동요가 생기고 구보(口報)가 생겨 토설(吐說)을 하는 등 신앙행위와 그 결과가 영가무도교의 내용과 유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

2025-10-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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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산대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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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정종은 다른 종파와는 달리 니치렌을 본불(本佛)로 보고 있다. 연화산은 다이세키지의 산호(山号)를 다보후지대일연화산(多宝富士大日蓮華山)으로, 약칭하여 대일연화산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일련정종의 본격적인 한국 유입은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이다. 왜색종교로 인식된 이 종파를 정부는 1964년에 금지시켰다. 이후 활동의 제약이 해제되고, 한국에서는 여러 분파가 활동하고 있다. 다이세키지의 신도단체였다가 독립한 창가학회의 한국지부인 SGI한국불교회를 필두로 한국일련정종총본부, 대한정법일련정종법화강불교회, 연화산대한사, 대한불교일련종 대법산광선사, 일련정종중앙회 등이다. 연화산대한사는 일련종 종립대학인 릿쇼(立正)대학을 졸 ...

2025-10-0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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